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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증상이 아니라 삶이다”, 『바람의 초상』 출간(박도순, 윤진)

나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장세환 2025년 11월 24일 오전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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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초상.jpg출판사 제공

농산어촌 의료 사각지대에서 40여 년을 버틴 한 간호사의 손편지와 일기가 책으로 묶였다. 보건진료소장으로 일해 온 박도순의 산문집 『바람의 초상』은 “환자는 증상 집합체가 아니라 삶의 맥락이 얽힌 사람”이라는 신념을 기록으로 증명한다. 간호대 입학 무렵 아버지의 안부 편지에서 시작해 첫 발령지 구천동, 은퇴를 앞둔 오늘까지, 느리게 적고 오래 간직한 글들이 농촌 보건의료의 현장을 조용히 비춘다.

책은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만남’의 역사다. 이름을 아는 이웃, 오래 본 어르신, 피서철 관광객까지—비익명적 관계 속에서 간호사로서의 자아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편지의 호흡으로 흐른다. 진료실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뒷모습에 남은 그늘, “찬바람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같은 생활 언어를 임상기록으로 옮기기까지의 망설임은 의료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총 5부 구성도 뚜렷하다. 1부는 “몸 성히 진학하느냐”로 시작하는 가족·연인의 편지, 2부는 구천동 진료소에서의 일기와 결혼의 기록, 3·4부는 현장과 학문 사이에서 간호 철학을 세워가는 서신, 5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진과 짧은 글로 남겼다. 손편지가 사라진 시대에 느린 기록이 지닌 정서적 복원력, 돌보는 사람의 소진을 글쓰기와 독서로 건너간 저자의 자기 돌봄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독자에게 남는 것은 응급 매뉴얼이 아니라 태도다. 작은 보건진료소가 ‘가벼운 증상’만 오는 곳이 아님을, 지역의 ‘작은 포스트’가 공동체의 심장 역할을 대신하기도 함을, 저자의 사소한 문장들이 설득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모든 사람—의료인, 사회복지사, 교사, 부모—에게 이 책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끝내 책이 묻는 질문은 간단하다. 나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1월 24일 오전 04:02 발행
#바람의초상#박도순#윤진#보건진료소#농촌보건의료#간호사에세이#기록문학#편지와일기#인간다움#지역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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