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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유물: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가장 빛나는 보물들』 출간(정잉 지음·김지민 옮김, 글항아리)

“유물을 응시하면, 유물도 당신을 응시한다”

장세환 2025년 11월 17일 오전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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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유물.jpg출판사 제공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국보 36점을 한 권에 담았다. 문학과 유물을 함께 읽어 온 중문학자 정잉은 공습과 야간 이동, 폭격을 뚫고 살아남아 타이베이에 안착한 소장품의 운명을 따라가며, 우리가 왜 유물을 “지금, 여기”의 언어로 다시 봐야 하는지 묻는다. 저자는 황제들의 다보격을 빌려 독자의 마음속에도 작은 서랍을 만들고, 그 서랍에 한 점씩 천천히 보관하는 방식으로 미의 기억을 쌓게 한다.

책은 정요의 눈처럼 맑은 백색, 여요의 비 갠 하늘빛, 남송 관요의 담연한 선, 건륭 법랑채의 과감한 호사까지 도자 미학의 스펙트럼을 단번에 보여준다. 동시에 소동파의 필의가 깃든 서화, 왕몽의 산수, 명대 칠기의 공예미를 문학적 문장으로 해설한다. “유물은 동경이다”라는 저자의 선언처럼, 한 점의 기물이 지나온 권력과 전쟁, 취향과 기술의 층위가 서사로 펼쳐진다.

특히 ‘북송 여요 청자무문수선분’ 앞에서는 문장이 속도를 늦춘다. 무늬를 비워 빛을 머금은 그릇, 가장자리의 훈색이 도는 순간을 붙잡아 “여백에 도는 빛”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이 책의 미감과 감식안을 압축한다. 정요의 절제, 관요의 의연함, 건요 찻잔의 시대성은 각각 성리학과 문인 취향, 차 문화라는 맥락으로 이어진다. 미술사와 재료과학, 문학사의 교차점이 독서의 밀도를 높인다.

정잉의 장점은 ‘설명’보다 ‘완상’에 가깝다는 점이다. 독자를 끌고 가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시선이다. 유물 앞에 오래 서서 보는 방법, 전시장 동선을 만드는 요령, 흰색의 곤경을 돌파하는 색채 감각을 친절한 경어체로 건네준다. 번역을 맡은 김지민의 문장은 원문의 호흡을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안착시킨다.

결국 이 책은 박물관으로 건네는 초대장이자, 일상을 유물처럼 탁월하게 만드는 감식 수업이다. 한 점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운 순간, 우리의 하루도 천천히 빛을 머금는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1월 17일 오전 02:26 발행
#애착유물#정잉#김지민#글항아리#타이베이고궁박물원#국보#여요#정요#관요#미술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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