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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따라 걷다, 끝에서 자신을 만나다”, 『영수와 0수』 출간

복제와 기억 거래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시작되는 추적과 구원의 이야기

장세환 2025년 11월 13일 오전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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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 인공지능이 생활 질서를 바꾼 근미래, 한 남자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여행에 나선다. 그에게는 동행이 있다. 외모와 습관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지만 결정의 순간마다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또 다른 남자다. 이들은 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기억 거래 시장을 통과하고, 편집자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구매 경로를 하나씩 되짚는다. 담배가 사탕으로 바뀐 장면, 불길 앞에서 멈춘 손동작 같은 미세한 차이가 방향을 잡아 준다.

추적이 깊어질수록 질문도 선명해진다. 두 사람 중 누가 원본이며 누가 대체물인지, 소각장의 연소 버튼은 누구의 손끝에서 눌렸는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하는지. 여정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추리의 결을 띠고, 독자는 단서의 조합이 바꾸는 의미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서사의 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가볍지 않다. 대화의 리듬과 장면 전환이 영화처럼 흐른다.

여기서 비로소 정체가 드러난다. 김영탁 감독이 소설가로 발표한 장편 『영수와 0수』는 한 남자가 스스로의 자리를 비우기 위해 선택한 결정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주인공은 자신 대신 죽음을 맞을 존재를 구매하지만, 뜻밖에도 그 존재가 먼저 삶을 포기하려 하자 계획은 거꾸로 뒤집힌다. 주인공은 그를 살려야만 한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던 발걸음이 타인의 생을 지키는 임무로 바뀌는 순간, 로드 무비는 심리 스릴러로 전환된다.

작품은 기억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장, 자살을 강하게 통제하는 제도, 복제를 통해 대체 가능한 나를 전제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중심에는 언제나 관계가 있다. 서로를 오해하고 멀어지다가도 결국 다시 끌리는 마음, 살리려다 지워 버릴 뻔한 위험한 충동,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타인도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이 긴장과 여운을 함께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목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구성도 인상적이다.

문학과 평단의 반응도 이어졌다. 소설가 천선란은 독특한 이야기라고 평했고, 드라마 디피의 한준희 감독은 두 인물의 생동감을 추천사로 전했다. 출간본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연재분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정리했고, 아르테에서 선보였다. 김영탁은 첫 장편 『곰탕』으로 대중적 반향을 얻은 바 있으며 현재 영상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번 신작은 이전의 유머와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이라는 더 단단한 질문으로 깊이를 넓혔다.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한 줄의 물음은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기억으로 나를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물음은 자신의 일로 바뀐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소설은 진짜 시작된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1월 13일 오전 08:55 발행
해시태그#영수와0수#김영탁#아르테#기억편집#복제인간#근미래소설#심리스릴러#한국SF#장편소설#신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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