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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출간(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2014 노벨문학상 작가의 초기 대표작, 개정 번역으로 돌아오다
출판사 제공
파트릭 모디아노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새 판본으로 나왔다.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모디아노 작품이자 독자 호응이 꾸준했던 책을, 초역자 김화영의 초판 해설과 새로 쓴 해설을 함께 실어 업데이트했다. 작가가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려는 집요한 노력”이라 적은 문장처럼, 작품은 흩어진 기억 조각을 그러모아 정체성을 더듬는 여정을 그린다.
서사는 첫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 ‘나’에서 시작한다. 가족 수첩과 등록부를 들여다보며 공란과 가명, 점령기의 흔적을 마주한 화자는 도시에 흩어진 장소와 인물, 날짜와 번호 같은 물질적 흔적을 따라 과거를 추적한다. 각 장은 독립된 단편처럼 펼쳐지되, 장면마다 스며드는 불안과 상실의 기운이 하나의 음으로 수렴한다. 파리 점령기의 그림자, 라디오에서 흘러드는 시대의 균열, 중국과 스위스·이탈리아로 이어지는 떠남과 회귀가 겹겹이 배치된다.
모디아노는 객관 기록과 사적 기억의 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세례 증명서, 가족관계등록부 같은 문서가 ‘존재의 증거’로 제시되지만, 빈칸과 누락은 오히려 부재를 드러낸다. 화자는 그 빈틈을 상상의 힘으로 재구성하며, “사분의 삼이 부서진 조각상”에 남은 선을 더듬듯 기억의 입체를 복원해 간다. 영화 각색과 촬영 현장, 실재와 허구가 교차하는 인물 군상이 더해지며 작품은 모디아노 특유의 오토픽션으로 굳어진다.
이번 판은 문장 결을 다듬은 번역과 풍성한 해설로 읽는 결을 넓혔다. 김화영은 작품을 “기억의 예술”로 규정하며, 대전 이후의 상실과 정체성의 흔들림을 비추는 모디아노 문학의 열쇠로 읽어낸다. 연속적 플롯 대신 파편적 장면을 고집하는 이유, 문서와 고유명사가 불러내는 물성의 효과, 그리고 “뿌리 없이 떠도는 자”가 언어로 집을 짓는 과정을 천천히 짚는다. 우리 시대의 프루스트라 불린 작가가 남긴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의 재구성, 이번 개정판이 가장 매끈한 입구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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