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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시간이 각본으로 다시 흐른다”, 『봄날은 간다 + 8월의 크리스마스 각본집』 세트 출간(허진호 외, 스튜디오오드리)
멜로의 미학을 문장으로 복원한 첫 대본 세트… 음악과 침묵, 시선과 호흡까지 텍스트로 읽는다

스튜디오오드리가 2025년 10월 24일, 한국 멜로의 좌표를 세운 두 작품의 각본을 한데 묶은 『봄날은 간다 + 8월의 크리스마스 각본집』 세트를 선보인다. 대본은 영화가 남긴 명장면을 넘어서 대사 사이의 여백과 지문 속 리듬을 드러내며, 허진호 감독이 구축한 정서의 문법을 독자가 ‘읽는 감각’으로 재경험하게 만든다.
두 영화는 사랑을 요란하게 설득하기보다, 사라짐과 머묾의 순간을 정교하게 포착해 한국 멜로의 어휘를 바꿔 놓았다. 1998년작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사진관을 지키는 서른대 중반의 정원과 주차 단속 요원 다림이 나누는 은근한 온기를 따라가며, 삶의 유한성과 사랑의 지속을 조용히 비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공식 DB는 작품의 배경과 정원의 일상을 “골목 사진관의 잔일과 동네 사람들의 의뢰, 그리고 장례사진 촬영” 같은 사소한 하루들로 묘사한다. 이 일상적 호흡 위로 다림과의 관계가 얹히며, 영화는 절제된 서사와 최소한의 대화로 오래가는 울림을 남긴다.
2001년작 『봄날은 간다』는 소리 채집가 상우와 라디오 PD 은수의 계절 같은 관계를 통해, 시작과 변화를 견디는 감정의 미세한 결을 들려준다. 한국영상자료원 영문 페이지는 작품이 “자연의 소리와 인물의 감정을 병치해 관계의 온도를 들려준다”는 취지의 줄거리를 제시한다. 대사보다 현장음과 침묵, 시선과 몸짓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영화답게, 각본집은 그 ‘비어 있음’의 구조를 종이에 고스란히 옮겨 놓는다.
이번 세트의 가치는 두 편을 ‘함께’ 읽을 때 더 명확해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사진과 기억의 프레임으로 사라짐의 윤리를 말한다면, 『봄날은 간다』는 소리와 현장의 감각으로 변해 가는 마음의 물성을 탐색한다. 장르적 수사를 덜어낸 문장, 행간을 열어둔 지문, 반복해서 되돌아오는 단어의 배치까지. 독자는 장면의 미장센만이 아니라 호흡의 속도, 컷과 컷 사이의 간격, 음악이 들어오기 직전의 정적 같은 ‘시간의 체감’을 읽어낼 수 있다. 두 작품을 나란히 펼치면, 하나는 사진의 멈춤으로, 다른 하나는 소리의 흐름으로 사랑을 기록한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평단은 이미 두 작품을 “소박한 이야기와 최소한의 대화로 큰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 멜로의 고전으로 호명해 왔다. 해외 비평 역시 군더더기를 덜어낸 감정의 설득력을 높이 평가한다. 각본으로 만나는 순간, 이 평가의 근거가 어떻게 문장 단위에서 구축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흘러갔던 한숨과 미소, 객석을 적시던 침묵의 길이. 이제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로 그 시간을 다시 조율한다. 대본은 스틸컷이 아닌 ‘텍스트의 시간’으로 영화를 돌려주고, 독자는 장면이 아니라 문장을 수집한다. 두 편을 사랑해 온 세대에게는 기억의 복원이고, 처음 만나는 세대에게는 한국 멜로의 문장 교과서가 될 것이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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