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세

신간 소식

“두 거장의 마지막 산책길에서 건진 ‘영혼의 언어’”,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출간(미구엘 세라노, 생각지도)

문학과 심리학이 만난 자리에서 아직 유효한 질문을 꺼내다

장세환 2025년 10월 24일 오전 09:21
178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jpg출판사 제공

스위스의 산자락에서 마주 앉은 노년의 헤르만 헤세와 칼 구스타프 융. 문학과 심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평생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두 사람이 말년의 사유를 고요히 정리해 남겼다. 칠레 출신 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미구엘 세라노가 두 거장을 차례로 찾아가 기록한 대화록이 국내에 소개됐다. 제목은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책은 두 사람의 삶이 가리킨 동일한 좌표를 낱낱이 복원한다.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서는가. 혼란과 분열을 지나 내적 화해에 도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세라노는 젊은 시절 『데미안』과 융의 저술에 사로잡혀 이를 내면의 스승으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도 근무 시절 사색 끝에 두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섰고, 스위스의 외딴 마을에서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사유를 거듭하던 그들을 만났다. 그는 만남을 동시성의 작용이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는 종교와 예술, 죽음과 꿈, 집단무의식과 자기 완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는 난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추상적 교설의 나열이 아니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수많은 예술가에게 촉발점이 된 사고의 궤적이 구체적 장면과 함께 펼쳐진다.

자료적 가치도 높다. 헤세가 1922년에 아내를 위해 쓴 동화 「픽토르의 변신」과 직접 그린 수채화, 두 사람의 친필 편지가 한데 수록됐다. 헤세와 융이 스스로의 작품과 이론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했는지, 말년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1965년 스페인어 초판 이후 영어 개정판과 독일어판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읽혀 왔고, 국내판은 정여울 작가와 이나미 교수의 해설성 추천으로 읽기의 관문을 낮췄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고독을 호소하는 오늘, 책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회복하자는 제안을 던진다. 올바르게 행하려는 태도, 본성에 따라 살아내려는 의지, 자신을 알기 위한 고독한 공부가 다시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

독자는 두 거장의 사유를 따라가며 익숙한 질문을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나를 완성시키는가. 헤세와 융은 정답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쪽으로 조용히 등을 떠민다. 문학은 마음의 언어로, 심리학은 영혼의 문법으로 서로를 보완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특정 학문의 경계를 넘어 삶의 기술을 묻는 한 편의 기록문학이 된다. 늦가을 서가에서 오래 남을 한 권이 도착했다. 제목은 조용하지만 질문은 단단하다.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가.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24일 오전 09:21 발행
#신간#인문교양#헤르만헤세#칼융#영혼의편지#자기탐구#동시성#내적화해#기록문학#생각지도

관련 기사

『생각보다 괜찮은 나를 발견했다』출간(이진아, 밀리언북)

『생각보다 괜찮은 나를 발견했다』출간(이진아, 밀리언북)

11월 5일 오후 05:24
20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11월 5일 오후 05:15
5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출간(유스이 류이치로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출간(유스이 류이치로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11월 5일 오후 05:0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