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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검은 목소리를 다시 쓰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출간(마리즈 콩데, 은행나무)

식민·인종·젠더의 억압을 뒤집는 대안 역사 서사

양정현 2025년 10월 23일 오전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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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jpg출판사 제공

은행나무가 마리즈 콩데의 대표작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를 펴냈다. 세일럼 마녀재판의 기록에 이름만 스쳐 지나간 흑인 여성 노예 ‘티투바’를 1인칭 화자로 불러 세워, 역사 서술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운 작품이다. 배경은 폭력과 차별의 시대지만, 콩데는 절망을 확대하지 않는다. 기원의 자리로 눈을 돌려 바베이도스의 흙, 치유의 의례, 여성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북쪽의 청교도 도시에서 혐오와 공포의 언어에 맞서는 힘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힘은 ‘마녀’라는 낙인을 전복하는 방식에 있다. 티투바의 능력—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교감, 병자를 돌보는 치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술로 재맥락화된다. 그러나 백인·가부장 권력이 구축한 법과 도덕은 그 기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법정의 언어는 증언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콩데는 그 침묵의 틈을 서사로 벌려, “누가 역사에서 배제되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기록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티투바가 감옥에서 만나는 헤스터(호오손의 ‘주홍 글자’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 박해의 기억을 지닌 유대인 벤저민과의 연대는 작품의 윤곽을 더 단단하게 한다.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상처를 통해 연결되는 수평적 관계가 여기서 태어난다. 콩데는 여성, 흑인, 유대인 등 서로 다른 타자들이 겹치는 지점에서 ‘함께 버티는 상상력’을 소환하고, 그 상상력이 어떻게 편협과 위선을 잠식하는지 꾸준히 보여준다. 엄중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문장은 정확하고 담담하며, 인간을 향한 애정의 온도를 잃지 않는다.

구성은 1부·2부·에필로그로 이어지고, 말미에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록’을 덧붙여 소설적 재구성과 실제 자료의 경계를 명시한다. 덕분에 독자는 픽션의 몰입과 사료의 건조함 사이를 왕복하며, “대안 역사 서사”의 미학을 체감한다. 옮긴이 정혜용은 프랑스어 원문의 리듬을 살리되 정치·문화적 맥락을 간명하게 풀어, 국내 독자에게 낯선 지형을 무리 없이 건너가도록 돕는다. 수상 이력 또한 작품의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원작은 1987년 여성 문학 대상, 1994년 일드프랑스 젊은 독자 대상을 받았고, 저자 콩데는 2018년 ‘뉴 아카데미 문학상’, 2021년 ‘치노 델 두카 국제상’으로 세계 문학사의 전면에 다시 올라섰다.

『나, 티투바』가 지금-여기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한 사람을 ‘타자’로 밀어낸 사회는 언젠가 그 사회 전체의 감각을 잃는다. 콩데는 그 상실을 기록하는 대신, 연대와 존엄의 언어를 복구한다. “지금 여기와는 다른 삶의 방법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티투바의 목소리로부터 시작해 독자의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은행나무판 한국어 번역본은 그 되돌아오는 목소리가 더 멀리, 더 오래 울리도록 매개하는 통로다.

양정현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23일 오전 04:0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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