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공허한 십자가』 리커버 출간(히가시노 게이고, 자음과모음) 부제목
속죄와 형벌 사이, 남겨진 자의 질문
출판사 제공
미스터리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가 자음과모음 리커버로 돌아왔다. 사진작가 이옥토의 이미지가 표지에 더해지며, 이미 검증된 서사의 밀도와 함께 새로운 시각적 몰입을 제안한다. 리커버가 단순 포장 교체에 그치지 않는 까닭은 주제가 지금-여기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 그리고 사회가 약속한 ‘형벌’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속죄’의 간극을 정면에서 묻는다.
기점은 한 통의 통보다. “어젯밤에 돌아가셨습니다.” 형사의 말은 딸을 잃고 무너졌던 주인공 나카하라를 다시 과거로 끌어당긴다. 아이 살해범은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상실은 부부의 관계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유족이라는 이름은 일상을 낯설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전 부인 사요코가 살해된다. 나카하라는 또 다른 장례의 문턱에서 기억과 죄책감, 분노의 실타래를 다시 움켜쥔다. 현재의 사건을 쫓는 발걸음은 필연적으로 ‘그날’의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전개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날선 질문들로 가속한다. 사요코가 남긴 원고, 사형제에 대한 회의, 가해자 가족의 편지, 법정의 논리와 유족의 상처가 교차한다. “분명히 모순투성이군요.”라는 대사는 제도와 감정의 틈을 응축한다. 히가시노는 범인을 지목하는 퍼즐의 쾌감 대신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가’라는 도덕적 미궁을 밀어붙인다. 감옥에서의 시간이 속죄의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이 죄를 갚는가, 법이 선고한 형이 피해자의 생을 되돌리지 못할 때 우리는 어디서 정의를 확인하는가. 소설은 답을 서둘러 봉인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사유의 부담을 돌려준다.
결말의 여운은 윤리적 선택의 무게로 남는다. 복수의 충동과 시민으로서의 합의, 유족의 존엄과 사회적 안전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이 작품은 미스터리의 장르적 엔진을 빌려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길게 울린다. 리커버는 그 질문을 오늘의 독서장으로 다시 올려놓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판결문을 쓰게 될 것이다. 쪽수·값·ISBN·분류 등 세부 출판 정보는 출판사 고지에 따라 반영된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관련 기사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