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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비행운』, 이혜령 출간(소원나무)

죽음과 애도를 통과해 ‘오늘’을 견디는 다섯 개의 여름

장세환 2025년 10월 17일 오전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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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비행운.jpg출판사 제공

정오의 하늘에 선명히 그어졌다가 서서히 풀리는 비행운처럼,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있다. 제1회 소원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여름의 비행운』은 그런 순간을 향해 다섯 번 걸어 들어간다. 현실 서사부터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까지, 서로 다른 결의 단편들이 ‘죽음’과 ‘상실’이라는 보편을 정면에서 바라보되 과장하지 않고, 담백한 문장으로 오래 머무는 감정을 만든다.

표제작에서는 남겨진 이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더듬는다. 아무 버스나 타고 목적 없이 떠났다가 결국 다시 길을 찾듯, 애도의 시간도 헤맴과 귀환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 준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오래된 다락의 물건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버려야 자리가 생긴다”는 어른의 말을 끝내 넘지 못하는 한 아이가 등장한다. 붙들고 싶은 것과 떠나보내야 하는 것 사이, 청소년기의 진짜 무게가 그 손끝의 망설임으로 전해진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세계를 약간 기울여 슬픔의 각도를 새로 재본다. 자율 주행 자동차의 좌석에 몸을 깊이 기대는 인물은 “오늘의 시간이 내일이면 기억이 된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타인의 바다가 결국 자신의 바다가 되는 성장의 순간을 받아들인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거짓말을 열심히 해야 진짜 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역설이 등장한다. 숨겼던 말과 끝내 하지 못한 말이 서로를 비추며, 독자는 자기 안의 미뤄 둔 인사 한 줄을 생각하게 된다.

심사위원단은 “정통 리얼리즘과 SF를 오가며 형식보다 마음을 먼저 세운 단편집”이라 평했다. 다섯 편 모두 균등하게 완성도가 높아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호흡으로 통과하게 한다는 점도 강점이다. 무엇보다 작품들은 애도의 종착지를 슬픔의 고정이 아니라 ‘함께’의 회복으로 설정한다. 곁의 손을 잡는 순간, 남겨진 자는 다시 오늘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서 이 여름들은 차갑지 않고 뜨겁다. 장르의 폭을 넓게 쓰되 문장은 절제되어 있어, 교실의 한 시간 읽기부터 북클럽 토론까지 다양한 자리에서 적용하기 좋다.

『여름의 비행운』은 청소년 서사의 현재형이다. 헤매되 돌아오는 법, 잃되 계속 살아내는 법을 이야기한다. 여름은 지나가지만, 그 여름의 비행운은 독자의 내부에 오래 남는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애도의 연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된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17일 오전 04:32 발행
#여름의비행운#이혜령#소원나무#소원청소년문학상#청소년문학#애도와상실#단편소설#현실에서SF까지#성장서사#오늘을견디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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