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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록 사이의 우주, 황경택 『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 출간(황소걸음)
도시에서 12달 식물 산책 루틴으로 자연 감수성 회복
출판사 제공
도시에 사는 비율이 전 세계 60, 한국 92에 이르는 시대. 자연을 멀리한 채 살아도 되는가를 묻는 책이 나왔다. 생태 만화가 황경택은 『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에서 답을 멀리서 찾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의 벚나무, 보도블록 틈의 풀꽃, 창밖의 가로수, 동네 공원과 뒷산—도시는 이미 자연의 작은 섬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안하는 방법도 단순하다. 매달 한 번, 아이와 손잡고 동네를 걷는 것. 책은 아빠와 아이의 산책을 따라 1월부터 12월까지 만나는 나무와 풀을 엮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스토리 만화, 오른쪽에는 식물 이야기와 세밀화가 나란하다. 정보는 친절하고, 시선은 낮다.
겨울 문으로 들어서면 팥배나무의 붉은 열매가 새들의 식탁이 되고, 동백과 복수초가 눈 사이로 봄을 예고한다. 3월의 개나리와 매실나무, 4월의 목련·벚꽃·제비꽃·민들레, 5월의 이팝·등나무·아까시·때죽·산딸나무가 이어지고, 6월에는 토끼풀이 벌에게 “헛걸음하지 않게” 시드는 시간까지 배려한다. 여름 한복판의 능소화·배롱나무·참나리, 8월의 목화·칠엽수·봉선화, 9월의 코스모스·밤·무궁화·도꼬마리, 10월의 은행나무·주목·단풍나무·국화로 가을을 누빈 뒤, 11월의 느티나무·계수나무·상수리나무, 12월의 메타세쿼이아·양버즘나무·버드나무·칡으로 겨울을 닫는다.
이 책이 남기는 것은 식물 목록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문장처럼, 쓸모의 잣대로 세계를 재단하는 습관을 내려놓자고 권한다. 덩굴이라 미워하던 등나무는 서로 기대는 생태의 은유가 되고, 독을 품은 주목은 항암 성분의 원천으로, ‘아낌없이 주는’ 상수리나무는 공존의 리듬을 가르친다. 이름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 한 발 더 다가가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는 관찰의 윤리도 반복해 상기시킨다. 도시가 자연을 배척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의 접촉 면을 확장할 수 있는 ‘생활권 숲’임을 보여주는 구성 역시 특징적이다.
『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관찰 입문서다. 달력처럼 펼쳐 읽고, 루틴처럼 따라 걸으면, 일상의 해상도가 올라간다. 자연을 특별한 행사가 아닌 생활의 속도로 초대하려는 이들에게 적확한 길잡이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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