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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종말의 가장자리에서 예술을 소환한 문장, 2025 노벨문학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스웨덴한림원)
『Sátántangó』에서 『War and War』까지—아포칼립스와 구원의 사이를 걷는 작가의 탄생 배경과 의미
위키미디어 제공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스웨덴한림원은 그의 작품 세계를 “파국의 공포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하는, 강렬하고 예언적인 문학”이라 규정했다. 발표는 10월 9일에 이뤄졌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장문의 단락과 숨 가쁜 리듬으로 세계의 균열을 응시해 왔다. 『Sátántangó』와 『The Melancholy of Resistance』, 『War and War』로 이어지는 대표작들은 쇠락하는 공동체와 미혹된 개인을 전면에 세우며, 몰락의 기미 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다시 삶을 작동시키는지 실험한다. 한림원은 그를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앙유럽 서사 전통의 거대한 계보 속에 놓으며, “부조리와 그로테스크의 과잉을 견디는 대서사”를 쌓아 올렸다고 평했다.
이번 수상은 문학의 지형에도 함의를 남긴다. 폭력과 허무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 서사가 다시 중심으로 소환되었다는 신호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종종 종말의 이미지를 불러오지만, 그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언어의 지속성이다. 세계가 흔들릴수록 그의 인물들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버티고, 독자는 그 호흡을 따라가며 현실을 재구성한다. 한림원이 강조한 “예술의 힘”은 바로 이 지점—절망의 문턱에서 문학이 인간을 다시 묶어 세우는 힘—을 가리킨다.
한국 독자에게도 그의 작품은 새삼 읽힐 이유가 충분하다. 도시의 피로, 공동체의 균열, 정보의 과잉이 일상화된 지금,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은 현실의 혼탁을 차분히 분해하고, 언어로 사유를 재배열하는 훈련이 된다. 『Sátántangó』의 집단적 추락, 『The Melancholy of Resistance』의 무력한 공포, 『War and War』의 구원에 대한 광신은 서로 다른 시대의 독자를 같은 질문으로 데려간다. “이 무너지는 세계에서 무엇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가.”
그의 수상 소식은 문학을 둘러싼 산업적 소음 한가운데 던지는 느린 문장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독서만이 세계와 자신을 다시 연결해 준다는 사실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집요하게 증명해 왔다. 이번 노벨문학상은 그래서 한 작가의 영예를 넘어, 불안정한 시대에 필요한 독서의 태도를 다시 요청하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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