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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을 칠하다, 『나는 옻칠로 위로받았다』 나성숙 출간(룩백북)

검은 광택 속에서 다시 일어선 한 예술가의 기록과 옻칠 지식의 집성

장세환 2025년 10월 14일 오전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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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옻칠로 위로 받았다.jpg출판사 제공

검은 칠은 빛을 삼키는 듯하지만 결국 빛을 되돌린다. 서울대 미대와 하버드 연수를 거쳐 국립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친 나성숙은 삶의 가장 깊은 상실 앞에서 옻칠을 붙들었다. 북촌 한옥 서로재를 마련해 하루 한 장 사포질하고 한 겹 한 겹 칠을 올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 과정은 애도의 시간인 동시에 복원의 기술이었다. 새 책 『나는 옻칠로 위로받았다』는 그 길의 서사와 함께 옻칠의 원리와 공정을 한데 모은 현장형 안내서다.

책은 개인의 회복담을 넘어서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한다. 저자는 전통은 박물관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살아 움직이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조칠과 금칠과 나전이라는 동아시아의 어원을 섭렵하되 한국의 옻칠을 하나의 현대 조형 언어로 정립하려 한다. 작품 제작에서 정제칠과 색옻칠의 층위를 구분하고 삼베와 목분을 활용해 질감을 살려 내며 금박과 자개를 더해 한국적 물성의 품위를 갱신한다. 한편 서로재에서는 배움의 문턱을 낮춰 스스로를 옻칠인이라 부르는 이들을 길러 왔다. 도구와 재료 소개에서 시작해 바탕 다듬기 건조 연마 마감에 이르는 열여덟 단계의 과정을 체계화해 학교의 교재로 정리했다. 손으로 익히는 기술을 감성 지능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책의 문장은 편집의 광택을 최소화해 육필의 호흡을 살렸다. 장인과 현장에 대한 경외가 곳곳에 배어 있으며 소반과 함 같은 생활 기물의 미감이 현대적 감수성과 만나는 지점이 선연하다. 저자는 일이 직이 아닌 업이 될 때 비로소 인간이 단단해진다고 강조한다. 옻칠이라는 한국어가 세계의 표준 명칭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다. 전통은 닫힌 명사가 아니라 열려 있는 동사라는 믿음이다. 검은 칠 한 겹이 끝내 빛을 돌려 주듯 이 책은 상처를 품은 독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지속 가능한 위로를 동시에 건넨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14일 오전 01:10 발행
#나는옻칠로위로받았다#나성숙#룩백북#옻칠#전통과현대#북촌서로재#공예에세이#K컬처#수공예#신간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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