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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을 오늘로 소환한 화폭, 『시월』 곽영화 출간(호밀밭)
나흘의 분노와 연대, 거리에서 피어난 민주주의를 그림일지로 복원하다
출판사 제공
우리 현대사의 큰 물줄기인 부마민주항쟁은 오월과 육월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화의 기폭제였다. 그러나 기록과 조명은 늘 부족했다. 화가 곽영화는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 참여자 증언 채록을 거쳐 『시월』을 내놓았다. 제목처럼 일은 시월에 시작된다. 부산과 마산의 골목과 광장, 교문과 역 광장을 배경으로 학생과 시민이 한 걸음씩 거리에 나서던 순간이 장면별로 이어진다. 전단을 만들고 선언문을 읽던 낮, 경찰의 저지선을 밀어내던 저녁, 상인이 문을 열어 학생을 숨기던 찰나, 상인과 노동자가 합류해 구호가 파도처럼 번지던 밤이 그림과 짧은 서술로 되살아난다.
이 책은 단순한 재현을 넘는다. 작가는 억압에 맞선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주저함과 결기를 포착해 항쟁의 정서를 지금 여기의 언어로 번역한다. 시각적 구성은 시점과 공간의 리듬을 살려 독자가 현장을 함께 걷듯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부영극장 앞에 모여 앉아 노래하던 학생들, 부산역에 모인 노동자들, 다음 날 새벽 도심에 진입한 군과 경찰까지 나흘의 궤적이 응축되어 있다. 검은 연기와 흩날리는 전단, 최루 가루와 비에 젖은 아스팔트의 질감까지 촘촘히 배치되어 있어 사건의 시간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곽영화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한결같이 추구해 온 작가다. 그는 이번 작업을 기록과 예술의 교차점에 세웠다. 명확한 사실의 축을 세운 뒤 장면의 감정을 증폭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도시의 공기 속에서 태어났는지 보여준다. 항쟁의 드라마를 낱낱이 담아내면서도 영웅 서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이름 없는 다수의 발걸음이 역사를 이동시킨다는 확신이 그림 전체에 흐른다.
『시월』의 가치는 두 갈래다. 첫째, 부마의 전모를 한 호흡으로 조망하게 하는 시각 기록이라는 점. 둘째, 기억을 현재의 실천으로 연결하는 동력이라는 점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묻게 된다. 그날의 자유의지는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가. 부마민주항쟁이 더 이상 교과서의 단락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시민의 감각 속 자산이 되기 위해, 이 그림일지는 설득력 있는 통로가 된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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