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피해 기록을 넘어 회복의 설계로, 『농촌마을이 아픈 이유』 김미숙 출간(솔과학)
장점 마을과 미나마타에서 배운 환경 갈등의 기억과 복구
출판사 제공
공장은 돌아가고 냄새는 스며들고 병명은 늦게 붙는다. 문화인류학자 김미숙은 이런 시간의 틈에서 주민들의 말을 채집해 한 권의 기록으로 묶었다. 『농촌마을이 아픈 이유』는 남원 내기 마을, 익산 장점 마을, 군산 서수면 주변 등 공해 시설과 맞닿은 농촌에서 벌어진 변화와 고통을 현장에서 듣고 보고 적은 책이다. 통계보다 구술을, 수치보다 생활의 흔적을 앞세워 환경오염이 일상과 관계망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공식적 인정과 복구로 이어지는지를 단계별로 복원한다.
책의 1부는 마을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부터 시작한다. 유해 시설의 설립과 증설, 악취와 분진, 물고기 떼죽음 같은 사건이 반복되자 주민은 신고하고 농성했지만 피로와 불신이 쌓이며 공동체가 갈라졌다. 2부는 역학조사와 인과성 규명의 실제를 따라간다. 조사 설계의 한계, 소극적 행정, 기업의 방어 논리 사이에서 주민과 민간 전문가, 시민단체가 설명회와 국회 토론회를 열어 공장과 발암 간의 관련성을 끝내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조사란 문장 하나를 두고 다투는 일이라는 사실, 그 문장이 주민의 치료와 배상과 기억의 출발선이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3부는 인정 이후의 숙제를 다룬다. 토양 정비와 배상 합의, 생활 복구, 추모와 기록의 장을 세우는 일까지 행정과 지역사회가 어떤 순서와 원칙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사례로 제시한다. 4부는 일본 미나마타의 두 기관을 비교하며 기억의 방식이 정책과 학습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행정의 전시와 시민의 전시는 무엇을 다르게 비추는가, 피해를 어떻게 말하고 누구의 언어로 남길 것인가를 질문한다.
저자는 사회과학자의 조사 노하우를 현장 감수성과 접목해 환경 갈등의 전 생애를 보여준다. 주민이 피해자인 동시에 해결자라는 출발점을 끝까지 견지하며, 생활 리듬을 회복하는 실천을 제안한다. 마을 단위의 감시 체계, 주민 주도의 기록과 교육, 독립적 전문가 풀, 신속한 역학조사 기준, 장기 추적과 심리 지원 같은 운용 지침도 사례 속에서 자연스럽게 추출된다. 환경문제를 사건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제도로 바꾸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매뉴얼이자 윤리 교본이다.
『농촌마을이 아픈 이유』는 딱딱한 보고서도, 일회성 고발문도 아니다. 현장에서 솟아난 문장으로 갈등의 원인과 회복의 경로를 동시에 비춘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마을을 위해, 기억을 제도로 바꾸는 법을 묻는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한 권이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관련 기사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