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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띄운 국수에서 면옥노조까지, 『냉면의 역사』 강명관 출간(푸른역사)

문학·과학·경제·사회학을 얹은 ‘찬 국수’ 인문서… 진흥왕 설화부터 자전거 배달, 가격 통제, 노동조합까지

장세환 2025년 10월 14일 오전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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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역사.jpg출판사 제공

국수 한 그릇이 어떻게 한 시대의 생활·기술·시장·노동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가. 한문학자 강명관이 신간 『냉면의 역사』에서 냉면을 둘러싼 기록과 증언을 모아 “찬 국수”의 긴 계보를 복원했다. 출발점은 신라 진흥왕이 순행 중 얼음을 띄운 메밀국수를 들었다는 설화. 조선 전기 조리서 《산가요록》·《음식디미방》·《주방문》·《계미서》에 남은 국수법을 엮어 면(麵)의 기술 변화를 짚고, 동치밋국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던 평안도의 겨울·여름 냉면이 서울로, 전국으로 퍼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문학 속 냉면의 흔적도 풍성하다. 고려 이색의 차가운 국수 시구부터 장유의 ‘자줏빛 장물’ 냉면, 1930년대 서북에선 메밀, 남부에선 밀국수가 대세였음을 전한 이광수의 기행문, 함경·평양·서울 냉면의 맛을 견주던 이효석의 글까지, 문장 사이로 입맛과 지역성이 교차한다.

맛의 뒤편엔 과학이 있다. 찰기 부족을 보완하려 세판과 국수틀이 도입되고, 서울식과 평양식 제면 방식이 갈라졌다는 복원, 반죽 응이·가성소다(잿물)의 사용이 위장 트러블을 낳았다는 기사, 1930년대 인력·시간을 줄인 제면기 개발 기록까지 기술사의 궤적을 더한다. 감칠맛의 근대화도 예외가 아니다. 동치미 의존을 줄이고 ‘아지노모도’가 육수 맛을 표준화하자 비용과 위생, 미각의 긴장이 같은 그릇 안에서 대립한다.

경제·사회사는 더욱 생생하다. 18세기 장시의 국수가게, 19세기 ‘사서 먹는’ 냉면의 확산을 거쳐, 20세기에는 전화 주문과 자전거 배달, 깃발 광고가 도시의 풍경을 바꿨다. 그러나 빠른 대중화는 문제도 키웠다. 해방 직후 식중독 사태로 제조·판매 금지가 내려졌고, 1940년 총독부는 가격과 분량을 아예 고시했다. 면옥의 반죽꾼·발대꾼·앞자리·고명꾼·배달부로 이어지는 분업은 1925년 평양 면옥노동조합의 결성과 파업으로 이어지며 ‘한 그릇’의 사회학을 완성한다.

『냉면의 역사』는 “맛집 가이드”가 아니다. 방대한 고문헌과 신문 기사, 조리서와 현장 증언을 교차 읽어 한 음식이 기술, 계절, 계급, 운송, 규제, 노동, 감각의 교차로였음을 보여준다. 그릇은 차갑지만, 이야기는 뜨겁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14일 오전 12:45 발행
#푸른역사#강명관#냉면의역사#한국음식문화사#조선조리서#동치미#국수틀#배달문화#면옥노조#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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