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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심고 조용히 자라게 하는 법, 『이지 가드닝을 위한 정원식물 100』 김경희 출간(목수책방)
찍박골정원 정원사가 고른 튼튼하고 손쉬운 100종, 실패를 줄이는 실전 설계도

봄이면 심고 여름이면 쓰러지고 가을이면 뽑는다. 많은 초보 정원사가 겪는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구호가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강원 인제 찍박골정원을 가꿔 온 정원사 김경희가 현장에서 살아남은 식물들만 추려 한 권에 묶었다. 아름답고 튼튼하며 관리가 쉬운 정원식물 100종. 이 책의 방향은 단순하다. 심었다 뽑았다를 멈추고 오래 보자는 것.
시작은 땅과 길이다. 산책로 포장과 경계선 설치, 물과 전기 설비 같은 하드스케이프가 갖춰져야 손이 덜 간다. 다만 시간을 이기는 것은 결국 식물이다. 데드헤딩이 필요 없는 품종, 땅을 덮어 잡초를 막아 주는 지피식물,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줄기, 매년 다시 심지 않아도 되는 여러해살이풀. 저자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 끝에 정원에 들일 식물의 기준을 이렇게 정리한다. 개화기가 길 것. 번식이 공격적이지 말 것. 스스로 선 채로 계절을 버틸 것. 꽃이 져도 자리를 비우지 말 것.
현장 노하우는 구체적이다. 은빛 잎을 가진 식물은 습기에 약하니 장마철 전후로 과감히 잘라 새순을 받는다. 건조에 강한 네페타와 러시안세이지도 봄 가뭄에 물을 조금 보태면 훨씬 튼실해져 쓰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구근으로는 백합을 으뜸으로 꼽는다. 양지도 반음지도 거뜬하고 월동이 쉬우며 지지대나 꽃대 정리가 거의 필요 없다. 나무는 성목보다 묘목이 착근이 빠르다. 상록수는 서양측백보다 음지에 강하고 낙엽이 지지 않는 주목이 관리가 편하다. 다만 결정적 장면에서의 화려함은 서양측백의 몫이라는 솔직한 비교도 곁들인다.
책은 계절을 따라 66종의 초화를 소개하고 구근과 교목 관목 34종을 더한다. 봄에는 헬레보루스와 금낭화, 브루네라와 아이리스가, 여름에는 에키나시아와 원추리, 러시안세이지와 유파토리움이, 가을에는 큰꿩의비름과 억새류가 장면을 만든다. 각 식물마다 내한성, 키와 폭, 일광과 토양 조건, 쓰임과 조합 팁을 실어 초보도 바로 고를 수 있게 했다.
결은 명확하다. 정원은 근성으로 버티는 곳이 아니라 구조와 선택으로 쉬워지는 공간이다. 이 책은 유행 품종의 목록이 아니라 실패를 줄이는 질문을 먼저 건넨다. 내 정원에서 정말 잘 살 식물은 무엇인가. 어디를 포장하고 어디를 비워 둘 것인가. 답을 찾다 보면 노동은 줄고 풍경은 깊어진다. 오래 보고 덜 손대는 정원, 그 현실적인 길이 100종의 식물과 함께 펼쳐진다.
양정현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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