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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어둠을 지나 찬란해진 목소리,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이예지 출간(위즈덤하우)

정서경·전도연·김연경·전소연 등 15인의 고백으로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한성욱2025년 10월 13일 오전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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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jpg출판사 제공

문은 열려 있으나 늘 같은 쪽으로만 더 쉽게 열린다. 누군가는 규격을 맞추라 말하고, 누군가는 포기하라 재촉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한 줄의 격언이 아니라, 끝내 물러서지 않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문장들이다. 이 책은 그 문장들을 모아 한 권의 지도를 만든다.

질문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누가 내 편인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어디까지 내가 나일 수 있는지.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흔들림을 본다. 상의 무게를 견디느라 침묵했던 순간, 정형화된 역할을 벗어나고 싶었으나 두려웠던 밤, 실패를 발화로 바꾸기까지의 공백. 독자는 그 공백을 채운 선택들을 따라간다.

이어지는 것은 태도의 디테일이다. 정서경은 고개 숙이지 않는 얼굴들을 쓰고, 김윤아는 지금 여기서 노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전도연은 전성기를 놓치지 않는 꾸준함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김연경은 과거의 자신을 이기는 방식을 들려준다. 이경미는 눈치 보지 않는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심은경은 정형화된 여성상 바깥으로 나아간 변화를 증언한다. 전소연은 숨김 없는 주체의 목소리를 내고, 김은희는 더 나은 세계로 향하는 서사를 세운다. 류성희는 기억에 패턴을 새기는 미술의 품격을 보여 주고, 정보라는 인간성과 여성성을 규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모니카는 결핍을 힘으로 번역하는 법을 말하고, 씨엘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위를, 강지영은 오래가는 말하기의 꿈을, 김민경은 서로의 자존감을 키우는 연대를 꺼내 놓는다. 최은영은 여자들의 우정이 얄팍하다는 낡은 문장을 반박한다.

여기서 비로소 책의 정체가 드러난다.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은 코스모폴리탄과 지큐, 씨네이십일 등에서 타인의 내면을 비추는 인터뷰로 주목받아 온 이예지 에디터의 첫 인터뷰집이다. 배우와 뮤지션, 감독과 작가, 선수와 희극인까지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15인의 목소리를 묶어,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서는 과정을 생생한 대화로 기록했다. 화려한 순간의 전시가 아니라 망설임과 실패, 복귀의 기술을 끝까지 따라가는 점이 이 책의 힘이다.

마무리는 독자의 몫이다. 이 기록은 타인을 응원하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게 만든다. 흔들릴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울더라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태도. 한 사람의 믿음이 다음 사람의 용기가 되는 장면.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와 더 단단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성욱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13일 오전 06:24 발행
#여자가사랑한여자들#이예지#문학동네#인터뷰집#여성서사#용기와연대#정서경#전도연#김연경#전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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