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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시대에 언어로 맞서는 방법, 『진실의 언어』 살만 루슈디 출간(문학동네)

검열과 혐오의 소음 속에서 다시 꺼낸 이야기의 힘

최준혁 2025년 10월 13일 오전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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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언어.jpg출판사 제공

사실이 의심으로 바뀌고, 거짓이 당당히 보호받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미치광이가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세상이라고. 혐오와 선동이 여론의 자리를 점령하면 먼저 무너지는 것은 우리의 말이다. 말이 흔들리면 판단이 흔들리고, 판단이 흐려지면 삶의 방향이 무너진다. 그래서 질문은 언어로 돌아온다. 무엇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 답의 실마리는 오래된 본능, 이야기에서 나온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를 원했고, 사랑한 이야기로 자신을 만들었다. 한 권 한 편이 우리의 세계관을 세우고, 날마다의 선택을 바꾸었다.

이야기의 본령은 단순한 사실 복제에 있지 않다. 허구는 비진실이 아니라 진실로 가는 통로다.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 삶과 죽음 같은 본질은 때로 가장 자유로운 상상에서 더 정확히 드러난다. 변화무쌍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학은 그 사실을 오래 증명해 왔다. 인생은 단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유령 이야기이자 가족 서사이고, 희극이며 동시에 비극이다. 우리는 모순을 견딜 때 더 넓어진다. 개인이면서 사회이고, 유한하지만 무한한 갈망을 품는다. 이주가 보편의 경험이 된 지금, 자아는 고정 관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각색되는 서사임을 삶이 보여 준다.

검열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예술의 책무는 또렷해진다. 표현의 자유는 미학의 문제를 넘어 시민의 권리다. 회화와 사진, 설치와 공연은 억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중국의 탄압을 고발한 예술가가 있었고, 러시아에서 무대가 저항의 언어가 된 사례가 있었다. 미국의 숨겨진 목록을 드러낸 사진가가 있었고, 노예의 역사를 새긴 작품이 미술관의 벽을 뒤덮은 적도 있다. 언어가 부서질 때 예술은 새로운 말의 그릇을 빚는다. 전후의 폐허 위에 도시를 다시 올리듯, 진실과 현실도 바닥부터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 거대한 논쟁을 한 권으로 모은 사람이 있다. 이야기의 기원에서 창작의 윤리, 자유의 의미와 예술의 역할까지, 긴 시간의 강의처럼 이어지는 목소리. 『진실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 책은 살만 루슈디가 발표한 에세이와 비평, 연설을 네 갈래로 엮었다. 첫 부분에서는 인간이 왜 이야기를 욕망하는지와 쓰기의 원리를 탐구하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필립 로스와 보니것, 베케트와 마르케스를 읽으며 문학의 변신 능력을 해명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진실과 용기, 관용을 공격하는 시대에 작가가 무엇으로 응답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고, 네 번째 부분에서는 회화와 사진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보여 준다. 한 편 한 편은 날카롭지만 전체는 관용으로 묶인다. 서로를 설득할 새로운 말, 서로를 지킬 단단한 말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고 답한다.

결론은 선언이 아니다. 언어를 지키는 일상적 실천이다. 거짓에 맞선 언어를 선택하고, 상대를 향한 관용을 훈련하고, 스스로의 각색을 멈추지 않는 것. 진실의 언어가 작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준비가 된다. 이 책은 그 준비를 위한 정밀한 지침이다.

최준혁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10월 13일 오전 06:17 발행
#살만루슈디#진실의언어#문학동네#표현의자유#이야기의힘#창작론#비평에세이#관용과용기#거짓과진실#신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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