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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유지 소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현대문학)
“마음도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소설을 쓰는 소녀와 집안일 로봇이 묻는 창작의 윤리와 우정의 미래
출판사 제공
중학생 미리내에게 소설은 숨이고, 집안일 로봇 아미쿠에게 미리내는 세계다. 요리도 빨래도 실수투성이인 아미쿠가 어느 날 미리내의 비밀 필명 ‘도로시’를 알아챈 순간, 둘의 관계는 고쳐 쓰기와 대화, 질문과 경청으로 묶인다. 조회 수가 오르자 의심도 따라온다. “AI가 대신 쓴 것 아니냐.” 도움을 ‘대필’로 몰아가는 교실의 시선 앞에서 미리내는 흔들린다. 그는 결국 홧김에 교환 신청을 눌렀다가, 자신이 버린 것이 ‘불량’이 아니라 ‘운명’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선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간명하지만 가볍지 않다. “이 글은 어디까지가 나의 것인가?”, “AI도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 “우정은 종을 넘어 성립하는가?” 아미쿠의 말 한 줄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현대문학×미래엔이 공동 제정한 제2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하유지의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는 로봇과 소녀의 티격태격을 통해 창작의 주체성과 협업의 경계를 동시에 비춘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시대, 작가는 정답을 내리기보다 과정을 보여준다. 미리내가 “기억 말고 기록”으로 자신의 문장을 세우고, 아미쿠가 “질문하는 법”으로 자아를 발견하는 서사에서 독자는 인간만의 영역을 다시 정의하게 된다. 한겨레 ‘주요일간지 소개도서’(2025년 9월 4주) 선정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빠른 기술의 시대에 이 소설은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르친다. 의심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설명하고, 도움 앞에서 소유하지 않고 관계를 맺는 태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 독자 역시 알게 된다. 좋은 소설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할 질문’을 남긴다는 것을. 지금 필요한 건 끄덕임이 아니라 참여다. “지금, 소설 모드를 켜십시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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