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은 왜 1500년이나 지속됐나", 전주홍 저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출간(지상의 책)
서울대 의대 교수의 의학 관점 대전환사, "질병을 신의 노여움에서 유전자 정보로 보기까지"
출판사 제공
"질병의 증상은 고통받는 장기의 비명이다." 18세기 이탈리아 의사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가 환자 생전의 임상 소견과 사망 후 부검 소견의 관련성을 조사하며 남긴 말이다. 질병의 원인을 신이나 체액이 아닌 눈에 보이는 장기의 손상에서 찾기 시작한 관점 대전환의 순간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전주홍 교수가 의학사를 '관점의 전환'이라는 프레임으로 재해석한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를 냈다. 이전 저서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에서 '인간 혹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이번에는 질병을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 어떤 치료법이 탄생하고 폐기되어 왔는지를 꼼꼼하게 짚는다.
책은 다섯 가지 관점의 대전환을 다룬다. 신화·주술적 관점에서 자연적 원인으로, 다시 해부학적 관점으로, 분자 관점으로, 마지막으로 정보 관점까지. 각 전환마다 역사와 철학, 예술이 맞물리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이 대표적이다. 네 체액(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의 균형이 깨질 때 질병이 발생한다는 이 이론은 중세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disease'는 균형의 뜻을 담은 'ease'와 부정 접두어 'di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편안함을 느끼고 유지할 수 있다는 관점이 엿보이지요."
하지만 잘못된 이론이었기에 치료법도 오류를 피할 수 없었다. 혈액이 뜨겁고 습한 성질이 있다는 해석에 따라 당시 의사들은 열이 나면 정맥을 잘라 피를 뽑았다. 갈레노스는 환자가 기절해도 사혈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 혈액이 순환하지 않고 말초조직에서 소모된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1628년 윌리엄 하비가 혈액 순환을 증명한 후에야 갈레노스의 이론은 퇴출됐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역할도 흥미롭다. "인체의 조화를 재현하려면 인체 내부와 외부 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부학에 몰두했고, 이것이 근대 의학 탄생의 토대가 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심미적 동기가 의학 발전에 기여한 셈이다.
합성 염료 기술이 신약 개발로 이어진 과정도 눈길을 끈다. "1908년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 미생물학자 파울 에를리히는 합성 염료에서 착안해 항생제 개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숙주세포와는 반응하지 않고 병원균에만 달라붙는 염료를 찾아낸다면 병원균만 선별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었지요."
현대 정밀의학의 출발점도 흥미롭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암호'와 '정보'가 승기를 잡을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자, 유전 정보도 암호처럼 해독해야 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유전자를 암호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유전자가 생명과 질병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학에서 은유가 단순히 이해를 돕는 수단을 넘어 과학 이론을 구성하고 개념을 확장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가 느껴지지요."
저자는 콜링리지 딜레마를 언급하며 인문학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될 때까지는 그 영향을 쉽게 예측할 수 없고, 기술의 의미와 용도를 충분히 이해하여 확고해진 후에는 통제가 매우 어렵다는 모순입니다. 이는 정밀의학 시대를 맞이하여 왜 우리가 인문학에 보다 주목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서울대 의대 조동현 교수는 "기원전 3000년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질병을 바라본 다양한 관점을 폭넓게 다룬다. 병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결국 시대적·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반가운 책이 나왔다"고 추천했다.
전주홍은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하며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과학하는 마음》 등을 집필했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관련 기사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