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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과 토란꽃으로 기억하는 사라지는 고향", 임인숙 저 『자전거 소풍 가네』 출간(짓다)

1988년부터 꽃농사 지은 시인의 첫 수필집, "21세기 문화가 아닌 꼬리마저 흐릿해지는 문화"

장세환 2025년 9월 30일 오전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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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소풍 가네.jpg출판사 제공

자전거를 타고 가던 신랑이 뒤에 탄 신부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혼자 내달렸다. 마을 사람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두드리며 웃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1988년부터 꽃농사를 지어온 시인 임인숙의 첫 수필집 『자전거 소풍 가네』가 점차 사라져가는 고향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전북 정읍 산내면 절안마을 출신으로 1998년 고향으로 귀향한 후 고향을 지킨 분들과 라오스에서 노동이민을 온 이들과 함께 꽃농사를 짓고 있다. "고무신, 목화, 각설이, 도깨비불, 혼불, 젖꼭지때왈, 토란꽃, 땅꽈리, 물꼬 싸움, 방물방수에 얽힌 이야기는 21세기의 문화가 아니다. 꼬리마저 흐릿해지고 있는 문화"라며 "그런 문화적 사물들과 현상에 대한 기억이 아직은 남아 있을 때 기록해 두려는 것"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혔다.

꽃신에 얽힌 기억이 애틋하다. "아버지 뒤에다 대고 꽃신 하나 사다주라고 손나발을 불었당게. 눈 빠지게 기달렸던 아버지는 꺼멍 코빼기신을 사 왔잔이여. 입을 댓발이나 빼물고 있는디 맥없이 눈물이 나더랑게." 손 등으로 눈꼬리를 훔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분꽃에 대한 추억도 아련하다. "저녁이면 피어나던 분꽃 향기가 우리 세 자매에겐 꿈이었고 기다림이었다. 산딸기 따던 시절, 동동구루무와 코티분을 갈망하던 시절, 분꽃씨로 분 바르던 시절, 하지감자 추렴했던 일, 청보리 타작,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일들이 어느새 저 멀리에 있다."

전쟁의 상처도 담겨 있다. "6.25 전쟁 때 큰아버지는 국군의 보급대원으로 가셨는데, 큰어머니와 아들딸 모두가 빨치산에게 희생당했다. 추령천의 물길이 멈춰버린 것 같은 아픔이었다. 큰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아끼며 웃어주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슬픈 웃음으로만 떠오른다."

토란꽃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성남 언니에게서 토란꽃을 봤다는 전화가 왔고 이어진 이야기. "어머니가 배 아팠을 때 아이를 가졌었대. 또 딸일까 봐 앵쑥갓물을 어쩔 수 없이 마셨대."

마을 사람들의 아픈 사연도 기록됐다. "영광댁은 박수를 받으며 손을 흔들고 서둘러 돌아갔다. 멀어져가는 그녀는 여전히 웃고 갔지만 그 웃음 뒤엔 깊은 울음이 줄줄 흘렀다. 얼마 전에 영광댁 며느리는 두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능다리댁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자연도 함께 슬퍼했다. "귀룽나무도 싹 틔우는 일을 잠시 멈추었다. 딱따구리도 나무를 쪼지 않았다. 나무도 새도 바람도 아픈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물에 떠내려간 돈에 얽힌 비밀도 담겼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도 주운 사람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감싸 안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버렸다. 1990년 6월 10일에 다리 하나가 완공되었다. 늦게나마 한풀이해 주는 듯 탄탄하게 놓인 다리를 소장수가 손에 전대를 소중히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저자는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수필 부문, 2023), 《문예연구》 신인문학상(시 부문, 2025)을 수상했다. 아름다운들꽃세상 대표이자 한방꽃차 1급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9월 30일 오전 09:58 발행
#자전거소풍가네#임인숙#짓다출판#정읍산내면#사라지는고향#꽃농사37년#절안마을#추령천#전북방언#수필과비평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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