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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잊히는 기억들이 삶을 끌고 가는 힘", 허정분 저 『어느 아낙의 병풍도』 출간(학이사)

강원도 홍천 출신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70년 생애를 병풍에 그려진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장세환 2025년 9월 25일 오후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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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낙의 병풍도.jpg출판사 제공

"다 어디로 사라져 갈까. 시나브로 잊히는 기억들이 삶을 끌고 가는 힘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흙을 일구며 살아온 허정분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어느 아낙의 병풍도』는 시인의 곡절했던 70년 생애를 병풍에 그려진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첫 시집 『벌열미 사람들』을 낸 지 20여 년 만이다.

시집에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로서의 삶, 문중 종부로서의 역할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의 이야기가 흙냄새 물씬 풍기는 독백으로 담겨 있다.

60여 편의 시가 '꽃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사당이 있는 집', '별자리에 너를 누인다',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4부로 나뉘어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시에서 시인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밥벌이로 나간 여덟 시간 품값의 최저임금, 그 일도 볕 좋은 날의 마른장마처럼 드물고" "한 생의 노동자가 짊어진 살아갈 괴로움을 어디다 호소해야 면죄부를 받을까"라는 구절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년의 아픔이 절절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깊이 있게 그려진다. "아우야 너 지금 어딜 가니? 거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가는 거냐? 아직 네가 가기엔 멀고 이른 길이란다"라며 막냇동생을 떠나보낸 상실감을 토로한다.

시를 쓰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시를 쓰기가 무미한 나이가 되었다 한 문장 쓰기가 이토록 건조하다니 시인이란 호칭이 무색할 지경이다"라며 창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시인은 "노년이란 삶의 과제가 따라왔다. 당연한 그 세월의 파편들이 내 몸의 중심이고 중독이란 걸 알았다"고 말한다. "내가 심은 작은 텃밭의 푸른 생들 앞에 호미를 들고 머무는 시간은 움직이는 중독이다"라는 표현에서 흙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600년을 이어온 문중 마을의 풍속도도 담겨 있다. '사당이 있는 집', '반세기', '큰산소', '백인대 연가' 등을 통해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하지만 더 사로잡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를 기록한 시들이다. "태생부터 가난과 운명을 같이한 기억, 흙 위에서 호미 들고 머문 시간, 아픈 혈연들의 상처와 어린 손녀가 하늘의 아기별이 되어 이별한 설움까지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다.

"풀 수 없는 응어리 같은 흔적을 기록에 남기는 행위는 쉼의 망중한이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 기꺼이 끌어안고 가겠다"는 다짐에서 문학에 대한 의지가 드러난다.

시인은 "여전히 문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거린다"며 "칠십 년 한 생애, 그 세월의 파편을 시에 온전히 담아낼 줄 아는 어느 아낙의 흔적"이라고 이 시집을 정의한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 『아기별과 할미꽃』,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 『벌열미 사람들』과 산문집 『왜 불러』, 『그곳에 그리움이 있었다』 등이 있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9월 25일 오후 12:45 발행
#어느아낙의병풍도#허정분#학이사#여섯번째시집#강원도홍천#농부시인#70년생애#문중종부#벌열미사람들#시나브로잊히는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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