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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과거의 포로가 아니라 현재의 창조자다", E. H. 카 저 『역사란 무엇인가』 재출간(육문사)

1961년 케임브리지 강연의 불편한 진실, 객관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세환 2025년 9월 22일 오전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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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jpg출판사 제공

"우리가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에 어떤 사실이 기술되어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인물인가가 문제이다." E. H. 카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던진 이 폭탄 선언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는 우리가 신봉하는 '객관적 역사'라는 환상을 산산조각낸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을뿐더러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없다. 그것은 기록한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절된다."

카의 핵심 주장은 더욱 급진적이다. "역사가는 잠정적으로 선택한 사실과 그런 사실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의 양편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 즉, 역사가가 먼저 해석의 틀을 갖고 있고, 그 틀에 맞는 사실들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배워온 역사 인식을 뒤흔든다. 사실이 먼저 있고 거기서 해석이 나온다고 믿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이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카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이 등장한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쳤을 때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또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된 서사일 뿐이다.

카는 경고한다. "역사를, 역사가만의 전유물이 되게 하지 말라." 이는 단순한 당부가 아니라 혁명적 제안이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라면, 결국 모든 시대는 자신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과거의 해석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역사가도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며 인간 생존의 모든 조건에 의해 그것에 묶여 있는 존재이다."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자기의 방법을 의식하면서 걸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개연적이고 부분적인 가설을 시험해 봐야 하며, 발전할 수 있는 수정의 여지가 언제나 남아 있게끔 잠정적 근사치로 만족해야 한다."

카는 역사의 객관성을 부정하면서도 역사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더 정직한 역사학을 제안한다. 편견을 인정하고, 해석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수정할 준비가 된 역사학 말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계속 소생한다. 그렇다면 당신도 이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역사가들의 해석을 맹신하지 말고, 스스로 과거와 대화하라. 그것이 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험하고도 해방적인 메시지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9월 22일 오전 09:13 발행
#역사란무엇인가#EH카#케임브리지강연#객관적역사의허상#현재와과거의대화#역사가의편견#사실과해석#역사철학#박종국번역#역사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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