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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전생이 기생이냐?' 비난 속에서도 민요를 지켰다", 양선희 저 『리전 글리클럽』 출간(독서일가)

K-POP의 원형, 일제강점기 합창단의 문화 저항... "민요 합창으로 깊이 잠든 조선의 혼을 깨우리라"

장세환 2025년 9월 19일 오전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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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전 글리클럽.jpg출판사 제공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한 소설가 양선희가 1928년 이화여전 글리클럽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 『리전 글리클럽』을 독서일가에서 출간했다. 경성공회당에서 벌어진 '방아타령' 합창 공연을 둘러싼 파장과 그 이후 10여 년간 이어진 문화적 저항의 이야기를 사실과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1928년 이화여전 글리클럽이 경성공회당에서 '방아타령' 합창을 공연했을 때 사회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여학생이 무대에서 민요 합창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부합하지 않으며, 사회적 통념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비판과 함께 "민요란 원시성과 순종성을 그 밑바닥에 둔 몰가치적 문화유산이며, 조선의 정신에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쏟아졌다. '이화여전생이 기생이냐?'는 비아냥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이화여전 합창단은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히 민요 합창 공연을 계속했고, 1930년대 초반에는 대대적인 전국 순회공연까지 감행했다. 메리 영과 안치용 교수(실존 인물 안기영이 모델)가 이끈 합창단은 『조선민요합창곡집』을 발간하고 앨범을 제작하는 등 체계적인 문화 운동을 전개했다.

소설 속 주인공 박에스더는 유관순 열사와 이화학당 동기생으로 설정됐다. "제 친구 유관순은 조선을 기억하기 위해 목숨을 내놨어요. 그에 비하면 저는 아주 쉽게 살고 있죠. 그러니 그까짓 한가한 쑥덕거림에 멈출 수 있겠습니까"라는 그의 다짐은 3.1운동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민요 합창에 대한 합창단원들의 신념이 인상적이다. "계속 민요를 불러야지. 모두가 익숙해지도록. 이화여전 합창단만이 아니라 전국의 합창단, 외국 합창단도 부르도록, 민요 합창이 일상이 되도록"이라는 의지로 문화적 저항을 이어갔다. 또한 "우리는 무대에 서 있으면 관객들의 표정이 보여요. 민요를 합창하면 그들은 모두 조선인의 얼굴이 되죠"라는 증언을 통해 민요 합창이 단순한 음악 활동을 넘어 민족 정체성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경성, 북간도,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등 국제적 무대로 펼쳐지며 웅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3.1운동, 만주사변 등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근대사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메리 영 선생은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이화에서 기악, 음악이론, 작곡을 가르친 실존 인물이며, 안기영은 1928년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1932년까지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로 활동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QR코드를 활용한 'M북(머글의 마법책)' 기술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표지의 QR코드를 찍으면 홍보영상과 책 소개, 내용 발췌까지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책이 열린다. 이는 양선희 작가가 지도하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미래뉴스실습에서 학생 창업자가 개발한 '알고리즘 프리 미디어'의 대안 프로그램이다.

소설가 고승철은 "K-팝의 원형이 100년 전 리전 글리클럽의 열정이 아닐까"라며 "합창단원들이 모여 노래를 만들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모습이 오늘날 K-팝 뮤지션의 활동상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025년은 이화여대 음악대학 설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작가는 "돌아보매, 나의 소녀 시절은 '추억'보다 '묵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절이었다"며 시작하는 이 소설을 통해 엄혹한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고통과 희망, 우정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9월 19일 오전 06:27 발행
#리전글리클럽#양선희#독서일가#일제강점기#이화여전#민요합창#K팝원형#문화저항#역사소설#M북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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