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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이 어명 어기며 늘린 은술잔의 비밀", 박운석 저 『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출간(박이사(이상사))
"참다운 술맛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500년 고문헌이 증명하는 K-술의 위대함
출판사 제공
만약 조선시대 최고 문인이 임금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이 술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송강 정철(1536~1593)은 술을 너무 좋아해 정적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조는 그에게 은술잔을 내리며 "하루 석 잔만 마시라"고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정철은 "어찌 하루 석 잔에 만족하랴." 어명을 어길 수 없었던 그는 놀라운 편법을 쓴다. 술잔을 두드려 크기를 늘린 후 사용한 것이다.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 박운석 원장이 출간한 『전통주로 빚은 인문학』은 이처럼 고문헌 속에 숨겨진 우리 술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복원해낸다. 저자는 "우리 전통주는 고문헌의 기록만으로도 500년 이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며 "이는 제조 방법이나 술맛의 우수성에 그치지 않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음주 문화에서도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술 문화의 핵심은 풍류였다. "술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척도"였다. 선조들에게 "풍류는 멋스럽고 풍치 있게 노는 일이다. 하지만 단지 잘 노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어야 풍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풍류 문화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단절됐다. "1895년, 기울어 가는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유생들이 향음주례를 핑계로 세 규합에 나섰고, 이는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일제는 이를 금지시켜 버렸다."
전통주의 과학적 우수성도 놀랍다. "우리 전통주 빚기에 숨은 과학은 물누룩인 수곡을 만드는 과정에도 들어 있다." 누룩을 물에 담가두는 이유는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누룩 속의 효모는 본격 활동에 앞서 8시간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다. 이 시기가 술 빚기에서 외부 잡균에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정춘'이라는 술의 제조법이 충격적이다. "쌀 11㎏에 물은 불과 1L만 쓴다.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단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술맛은 많이 달다. 실제 '꿀보다 달다'고 기록해 뒀을 정도다."
영조 때는 금주령 때문에 술을 차(茶)로 위장해야 했다. "영조는 말년에 다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이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송절차 덕분이었다." 실제로는 송절주였지만 "송절주를 굳이 송절차로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영조는 재위 기간 대부분 금주령을 내렸다."
당시 술의 사회적 기능도 흥미롭다. "술맛이 시고 나쁘면 주인집에 근심이 생긴다고 했다. 당시엔 곳곳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이 중요한 소식통이자 돈 되는 최신 정보를 가진 정보원이었다. 당연히 술맛이 나빠지면 과객이 줄고,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없으니 주인집엔 근심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 K-컬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자는 "최근 세계적으로 K-푸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K-푸드 발전을 위해선 K-술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일본의 스시가 세계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케와 함께였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5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술이 단순한 알코올이 아닌 '전통문화'라는 사실. 정철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그 가치를 이제야 우리가 되찾을 때가 왔다.
장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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