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길상·벽사부터 천문·상수까지, 옛사람들이 그림과 조형물에 담은 삶의 철학", 허균 저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 출간(돌베개)
"화복은 사람의 선악에 호응하여 하늘이 내리는 것" 귀신은 선악이 공존하는 양가적 존재
출판사 제공
한국미술사 전문가 허균이 전통 미술에 담긴 상징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해설한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를 돌베개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길상과 벽사, 삶과 죽음, 공간과 천문관 속에 담긴 전통의 지혜를 4개 주제로 나누어 풀어낸다.
옛사람들은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그림·조형물·건축물에 다양한 상징을 담았다. 대문에는 호랑이나 문신을 그린 문배 그림을 붙였고, 절의 법당은 무서운 얼굴의 귀면 기와로 지붕을 장식해 악귀의 침입을 막았다. 민간에서는 마을 수호신당에 솔가지, 붉은 고추, 숯을 꿰어 만든 금줄을 걸어 잡귀의 출입을 차단했다.
저자는 "사람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신화와 전설은 다시 사람의 관념과 정신세계를 지배한다"며 "비록 돌로 만든 조형물일지라도 자라가 놓인 그 공간은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한 해도의 선계로 변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복과 화에 대한 전통적 인식도 흥미롭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화를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어떤 화를 입었을 때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이 잠재돼 있다"며 "옛사람들은 복이란 스스로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 믿었다. 한국인에게 있어 화복은 결국 사람의 선악에 호응하여 하늘이 내리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귀신에 대한 양가적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귀신은 그 본체가 은미해서 실제로 보거나 겪어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일상 언어에서 드러나는 복합적 성격을 제시한다. "'귀신도 모른다', '귀신조차 넘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에서 귀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귀신이 도왔다'라고 했을 때의 귀신은 수호자가 된다. '귀신이 울고 간다'라고 할 경우의 귀신은 감성적 존재"라며 "이처럼 귀신에 관한 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정사이원론이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다"고 해석했다.
죽음에 대한 전통적 사생관도 독특하다. '발인'의 어원을 설명하며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자칫 길을 잃으면 망자는 원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며 산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며 "'명계의 지남거'로 여겨지는 수레 모양 토기를 무덤 속에 껴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발인은 "수레바퀴의 굄목을 제거하고 저승을 향해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 복원 과정에서 놓친 문제도 지적한다. 창덕궁 숙장문과 창경궁 빈양문의 편액이 원래 위치와 다르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1908년쯤 일제는 순종의 편익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어차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신작로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가 희정당 진입 방향에 맞추어 편액을 문의 서쪽에 옮겨 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단순히 현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 건축이 지녔던 내외의 질서와 방위 개념을 거스르는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천문 관념도 흥미롭다. "사람이 죽어 시신을 입관할 때 그 밑에 까는 판자를 칠성판이라고 한다. 한 조각의 판자에 북두칠성 모양을 본뜬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며 "북두칠성은 음을 주관하고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칠성판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것은 망자를 음의 자리, 즉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불교 사찰에 무속 신앙이 유입된 현실적 배경도 설명한다. "숭유억불을 건국 이념으로 삼고 출발한 조선 사회에서 왕족과 관련된 원찰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찰은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해결책으로 절에 재, 불공 등의 기복 의식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무교의 성수 신앙을 수용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관련 기사


『개초보 회계』출간(김우철, 어깨위망원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