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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의 자유를 묻다, 『역사와 자유의 이론에 관하여』 강의록 출간(세창출판사)

1964–65 프랑크푸르트 강의 복원… 『부정변증법』의 예비 작업, 역사·진보·자유의 변증법 재조명

양정현 2025년 9월 3일 오전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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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유의 이론에 관하여.jpg출판사 제공

역사는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우리가 묻고, 의심하고, 저항할 때에만 방향을 드러낸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역사와 자유의 이론에 관하여』는 1964–65년 프랑크푸르트대 강의를 롤프 티데만이 편집해 묶은 강의록으로, 훗날 주저 『부정변증법』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첫 설계도다. 아도르노는 “역사의 인식은 거리의 문제”라 말하며, 거대 서사에 취하거나 미시 사실에 매몰되는 태도를 동시에 경계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역사의 의미”라는 낙관의 기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자리에서, 철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그의 질문은 냉철하고도 집요하다.

책은 보편(합리성·총체성)과 특수(개별 사실·고통)의 긴장을 한 뎁스 더 파고든다. 민족정신·보편사·자연사·의지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헤겔과 칸트를 비판적으로 호출하며 “정신=현실”의 동일화가 어떻게 비판을 무력화하는지 밝힌다. 특히 ‘제2의 자연’—역사적 산물이 굳어져 자연처럼 작동하는 체제—에 대한 분석은 오늘의 관리사회와 순응의 심리를 날카롭게 관통한다. 승리자의 서사로 봉합된 보편사가 배제한 잉여와 잔여, 그 비동일적인 것들의 목소리가 여기서 복권된다.

아도르노에게 진보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파국을 지연시키는 일, 곧 “속박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는 일”이다. 파우스트적 기술, 자연 지배의 합리성은 진보의 증거가 아니라 적대의 심화일 수 있다. 그는 칸트의 형식적 자유론을 넘어, 충동·신체·사회적 맥락을 포괄하는 자유 개념을 모색한다. 진보가 “자연으로부터의 탈주”라면, 그 길은 동일성과 지배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우회로에서 열린다. 즉, 기술의 진전이 아니라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방향에서만 ‘진보’는 말이 된다.

이 강의록의 결론은 단호하다. 자유는 주어진 사실이 아니라 “속박에 맞서는 경향”이며, 부자유의 한복판에서만 창출된다. 따라서 “자유를 외치는 구호”는 오히려 타율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아도르노는 자유를 “전체의 자유와 투명하게 관계 맺는 행위”로 재정의하면서, 도덕·의지·책임의 언어를 현재화한다. 티데만의 세심한 편집은 아도르노 특유의 구두 리듬을 살리면서 난해한 논증을 또렷하게 가다듬었고, 한상원의 번역은 그 치밀한 곡선을 한국어로 정확히 옮겨 놓았다. “자유를 위해, 자유의 제약부터 사유하라”—오늘, 다시 필요한 명제다.

양정현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9월 3일 오전 07:50 발행
#세창출판사#아도르노#역사와자유의이론에관하여#부정변증법#프랑크푸르트학파#비판이론#철학신간#자연사#보편사#자유#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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