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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웅의 영광과 고뇌, 일본 1차 자료로 밝혀낸 새로운 진실", 김성 저 『손기정 평전: 제국의 트랙을 딛고 민족을 넘다』 출간(알렙)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후 남긴 말의 무게
출판사 제공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생애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평전이 출간됐다. 재일 한국인 학자 김성 교수(삿포로대)가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풍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손기정 평전: 제국의 트랙을 딛고 민족을 넘다』는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제국과 민족, 스포츠와 정치 사이에서 손기정이 짊어졌던 무게를 조명한다.
이 책의 핵심은 "젊은 시절 손기정의 삶을 옥죄었던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는 손기정이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들을 지도한 후 내뱉은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영광과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사건의 고통이라는 '영웅의 두 얼굴'을 그려낸다. 손기정은 제국 일본의 '대표 선수'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적 자부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다.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가 시상대 위 손기정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이 갈등을 극대화시켰다.
특히 일장기 말소 사건 이후 손기정이 겪은 고충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는 그의 회고는 정치적 감시와 압박 속에서 느꼈던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실제로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마라톤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메이지대학 입학 조건이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성 교수는 스포츠사와 조선 근대사 전공자로서 일본 내 1차 사료와 당시 언론, 자서전, 공문서 등을 폭넓게 발굴해 기존 손기정 전기나 자서전에서 다루지 못한 새로운 면모를 드러냈다. 특히 올림픽 관련 보도, 교육기관 문서, 경찰 기록 등 한국 학계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가 손기정을 어떻게 소비하고 활용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손기정의 이중적 정체성이다.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안봉근(안중근의 사촌동생)을 만나 처음 태극기를 본 손기정은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후 사인 요청에 한글로 '손기정'이라 쓰고 출신 국명은 'KOREA'라고 적은 것은 식민지 상황에서의 내면적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동이었다.
해방 후에도 손기정의 고뇌는 계속됐다. 1970년 박영록 국회의원이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돌담의 'JAPAN' 표기를 'KOREA'로 고친 '국적 회복 사건',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 선정되며 "조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최종 주자로 선정되다니 베를린 금메달보다 더한 영광"이라고 한 발언까지, 그의 삶은 끊임없이 스포츠와 정치의 교차점에 있었다.
저자는 "무엇이,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손기정의 삶을 통해 "영웅은 고뇌와 더불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2년 90세로 영면한 손기정이 대전 현충원에 '국가사회공헌자'로 안장된 것도 그의 복합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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