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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맞아 『슬픔의 틈새』 완결 출간
이금이 작가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9년 만에 대단원
출판사 제공
한국문학의 거장 이금이 작가가 9년에 걸쳐 완성한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편 『슬픔의 틈새』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사할린 한인들의 질곡 깊은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을 넘어 잊혀진 이들에 대한 증언이다.
소설은 1943년 3월 공주 다래울을 떠나 남사할린(화태)로 향하는 주단옥 가족의 여정에서 시작된다. 일본의 '국가총동원법' 일환으로 아버지를 따라 떠난 이 여행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 다시 주단옥 그리고 올가 송까지. 80년 세월 동안 이름과 국적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도 누구보다 간절하게 삶을 개척해나간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펼쳐진다.
1945년 8월 15일은 조국 해방의 날이었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또 다른 배신의 시작이었다.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던 조선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소련군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명령과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뿐이었다.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던 사할린 한인들은 갈 수 없는 조국을 가슴에 묻고,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앞에서도 매일 찾아오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조선인 단옥과 일본인 유키에 사이의 각별한 우정이다. 누구도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땅에서 두 소녀는 서로에게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니었다.
함께 유년을 보내고, 비밀을 나누고,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울고 웃는 삶의 순간들을 함께했다. 민족과 국적을 떠나 사회적 소수자로서 함께 아끼고 보듬으며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단단하고 경이로운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2018년 여름 불현듯 찾아온 "죽은 줄 알았던 태술이 사할린에서 살고 있었다"는 한 문장에서 시작해 7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직접 사할린을 방문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발로 뛰며 취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가 썼던 초고를 모두 버리고 소설을 새로 쓰며 인물들의 목소리에 더 가까이 귀 기울이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이금이 작가는 2024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였다. 3부작의 시작인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로는 2018년 IBBY 아너리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41년간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에게 꾸준히 시선을 둔 작가에게 이번 3부작은 필연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강화길 소설가는 "이금이 작가는 이번에도 그 입구를 찾아냈다"며 "비록 슬픔이 끼어들고 비애가 머무를지라도, 계속 앞으로 걸어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미래"라고 극찬했다.
홍은전 작가는 "거대한 슬픔의 틈새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찾으려 분투했던 사할린 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높이 평가했다.
정혜윤 작가는 "무관심과 망각 속으로 손을 뻗어, 그들의 고독에 함께하는 작가의 정성이 그들의 목소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조형근 사회학자는 "이들이 사할린에서 살게 된 건 슬픈 역사 때문이지만, 이들은 그 슬픔에 머물지 않고 '슬픔의 틈새'를 찾아 뜨겁게 사랑하고 당당히 살았다"며 "그 틈새야말로 얼마나 찬란하고 당당한 것인지"라고 평가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작품은 국가와 사회가 외면해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조명하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학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장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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