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를 커피라는 독특한 렌즈로 바라본 책이 주목받고 있다. 교육학자 이길상 교수가 선보인 『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는 작은 음료 하나가 어떻게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해왔는지 흥미롭게 펼쳐낸다.

1860년 프랑스 선교사 베르뇌가 주문한 18킬로그램의 커피콩이 조선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164년. 단순한 기호품이었던 커피가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위로와 격려의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장대한 여정을 107개 에피소드로 구성해 담았다.

저자는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복잡하고 굴곡진 한국사와 함께해온 커피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고종의 커피 애호부터 끽다점의 등장, 다방 문화의 전성기와 쇠락, 그리고 현재의 카페 문화까지 시대별 변천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1881년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민건호가 기록상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이다. 그는 부산감리서 근무 시절 작성한 일기 『해은일록』에 커피를 마신 경험을 여러 차례 남겼다.

왕실에서는 접대용 공적 음료로 사용되거나 고종의 개인적 취향으로 즐겨졌다. 당시 커피는 가비, 가배, 갑비차, 카피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광란의 1920년대 접어들면서 커피는 모던보이, 모던걸이 즐기는 '모던의 상징'이 됐다. 끽다점이 대중화되면서 등장한 다방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변모했다.

영화감독 이경손이 운영한 카카듀, 낙랑파라, 제비, 멕시코 등은 "거리의 오아시스이자 청춘의 꿈이 있는 가장 조선스러운 곳"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공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6·25전쟁 후 다방은 굴곡과 부침을 겪으며 상업다방으로 변모했다. 마담과 레지가 등장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티켓다방이 성행하면서 퇴폐화의 길을 걸었다.

1970-80년대에는 커피믹스와 자동판매기가 확산되면서 저급한 인스턴트커피가 소비자들의 입맛을 지배했다. 이 시기 커피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맛을 잃은 음료"였다.

1990년대 이후 커피전문점과 원두커피를 추구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면서 커피는 기호식품을 넛어 '문화의 음료'로 재탄생했다.

현재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뜻하는 '얼죽아' 문화의 뿌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찬 커피', 일명 '찬커'가 대유행했다.

아이스커피는 마자그란전투에서 더위에 지친 프랑스군이 커피 시럽에 찬물을 넣어 마신 데서 유래했다. 서양에서는 수인성 전염병 때문에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얼음산업 발달과 함께 꾸준히 사랑받았다.

한국커피협회 최주호 회장은 "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이토록 정교하게 풀어낸 작업은 매우 드물다"며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통찰과 자부심을 안겨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커피리브레 서필훈 대표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커피의 향에 숨어 있던 한국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며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시대의 기록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라고 추천했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서 커피는 네 번의 큰 파도를 지나왔고 지금 다섯 번째 큰 파도를 맞고 있다"며 "마지막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세계 최고 수준의 커피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