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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다시 쓰는 기억의 문장,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문학동네)
모녀의 애증을 통해 인간과 시대를 동시에 응시한 첫 회고록
출판사 제공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야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자신의 삶을 되짚으며 써 내려간 회고록 『어머니 내게 오시네』가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은 단순한 가족 서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로이는 인도 사회와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시선을 내부로 돌린다. 출발점은 어머니 메리 로이의 죽음이다. 교육자이자 강인한 여성으로 살아온 어머니를 통해, 작가는 사랑과 폭력, 존경과 상처가 얽힌 복합적인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책 속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삶을 규정짓는 거대한 존재로 그려진다. “내가 엄마를 떠난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였다”는 고백은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핵심 문장이다.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 거리가 필요했던 순간, 그 모순이 이 회고록 전체를 관통한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인도 사회의 단면을 함께 비춘다. 카스트 제도, 여성의 삶, 교육과 계급 문제까지 서사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특히 어머니가 학교를 설립하며 보여준 집요한 생존력과 확장력은, 한 인간의 삶이 사회 구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작가로서의 탄생 과정 역시 중요한 축이다. 영화 작업을 접고 글쓰기로 방향을 튼 순간, 그리고 언어를 “사냥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장면은 창작의 본질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이 책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한 작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이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는 결국 질문을 남긴다. 가장 가까운 존재와의 관계는 우리를 어디까지 규정하는가. 그리고 그 관계를 이해하는 일은 끝내 가능할까. 이 책은 그 답을 제시하기보다, 오래 붙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장세환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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