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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신간 출 (김영연, 문학세계사)
열린 한옥에서 돌봄을 다시 배우다
출판사 제공
서울 혜화동 한옥 게스트하우스 ‘유진하우스’에 50년을 울산에서 살아온 어머니가 들어온다. 딸 김영연은 기억이 흐려지는 속도를 막아 세우기보다, 함께 살아낼 방법을 찾는다. 치매는 어느 날 들이닥친 사건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이 젖듯”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고, 모녀의 하루는 그 느린 침투를 견디며 방향을 바꾼다.
한옥은 닫힌 보호 공간이 아니라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열린 집이다. 여행객들의 발소리가 마당을 스치고, 골목의 온기가 문턱을 넘나드는 동안 어머니의 기억은 자꾸 끊긴다. 그 틈에서 딸은 감정을 정리하고 규칙을 세우는 대신, 살려 두어야 할 순간을 고른다. “사랑은 본래 계산 바깥”이라 믿어온 딸이 ‘사랑의 빚’과 마주하는 과정은, 가족 돌봄이 감당과 죄책감만으로 굴러가지 않게 붙잡아 준다.
돌봄이 길어질수록 말은 거칠어지고 오해는 쉽게 생긴다. 딸은 그때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착한 거짓말”을 꺼내 든다. 한옥의 서까래 아래에서 시작된 이 전쟁 같은 시간은, 모녀가 서로를 더 낯설게 만드는 대신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엄마를 설득하는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건, 눈앞의 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라는 깨달음이 이어진다.
에세이는 감정의 고백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 돌봄 현장에서 부딪치며 정리한 ‘유진맘의 간병 노트’를 통해 반복 질문에 대응하는 법, 위기 순간의 정리법, 가족이 흔들릴 때의 기준 같은 실용적 팁을 묶어 놓았다. 불안이 큰 독자일수록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문장들이 중간중간 숨을 고르게 한다.
혜화동 골목길과 한옥의 사계절을 배경으로, 이 기록은 치매를 비극의 이름으로만 고정하지 않는다. 삶의 속도가 달라진 어머니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딸이 만들어 낸 하루는, 돌봄이 끝내 관계를 다시 쓰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억이 흔들려도 함께 앉아 밥 한 그릇을 비우는 순간이 남는다.
최준혁
언론출판독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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