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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작 『붉은 시대』 출간(한겨레출판)

극우시대를 헤쳐나갈 실마리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식민지 조선 좌파운동사를 복원한다

손선영2025년 8월 4일 오전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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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b553116-71f0-4740-af1d-ca83ec3f9855출판사 제공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작 『붉은 시대』 출간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식민지 조선 좌파운동사를 복원한다

광복절 80주년이자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박노자 교수의 역작 『붉은 시대』가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2023년 영문으로 출간된 'The Red Decades'를 번역한 이 책은 전간기(1·2차 세계대전 사이) 조선 공산주의운동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한 의미 있는 연구서다.

항일투쟁 최전선에 섰던 조선공산당의 급진적 의제들

1925년 4월 17일 경성에서 창당된 조선공산당은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투쟁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이들은 단순히 나라를 되찾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반제국주의, 소수민족 해방, 최저임금 보장, 산업재해 보상, 노동자의 경영 참여, 토지 개혁, 동성애 탈범죄화, 임신 중지 합법화, 유급 출산 휴가' 등 현재 관점에서도 급진적인 의제들을 거침없이 내세웠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를 드나든 이들 중 다수가 공산당원이거나 지지자, 공산당 재건운동 참여자였으며, 특히 해방이 가까워질수록 사상범 가운데 공산주의 관련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조선 좌파운동의 독창성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조선의 좌파운동을 고립된 현상이 아닌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해석한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이후 전 세계에 분출한 '붉은 물결'의 맥락에서 3·1운동을 비롯한 조선의 항일투쟁을 재평가한다. 저자는 1919~1923년 사이를 '붉은 물결'의 시기로 규정하며, 이탈리아의 '붉은 2년',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협력운동과 함께 조선의 3·1운동을 전 지구적 민중투쟁의 일부로 위치짓는다. 이러한 관점은 조선 공산주의운동이 당대 러시아, 독일, 중국 등지의 운동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새롭게 밝혀낸다. 특히 민족적·민주적·계급혁명적 성격을 모두 결합한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강력하고 고유한 특징을 분석하며, 박치우 같은 좌파 지식인들이 파시즘을 선구적으로 비판한 사상사적 성과도 조명한다.

코민테른 자료로 복원한 '붉은 시대'의 전모

소련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저자는 코민테른 기록 보관소 자료를 비롯해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의 1차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했다. 이를 통해 공산당 활동에 참여한 이들의 지적 궤적과 조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독창적 연구, 당 내 분파 논쟁과 강령 갱신 과정을 상세히 복원했다. 또한 조선 사회에 대한 당의 분석과 전략, 실천이 당대인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며, 1930년대 '적색' 노동조합이나 농민조합 활동을 통해 등장한 노동자·농민의 '유기적 지식인'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대한민국 정신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책은 단순한 역사 복원을 넘어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는 '붉은 시대'의 유산이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특히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서 유진오가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제시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가 바로 '붉은 시대' 세대의 오랜 집단적 고뇌와 모색에서 나온 결론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 순수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지향을 확인했음을 보여준다.

'극우 시대'를 헤쳐 나갈 실마리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가 '공산주의'에 대한 의도된 망각에 빠져 있으며,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이 재발하고 "공산전체주의"라는 표현과 함께 한국판 매카시즘이 횡행하는 시기, 이 책은 망각을 거부하고 '극우 시대'를 헤쳐 나갈 실마리를 제시한다. 추천사를 쓴 장석준 사회학자는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며 "《붉은 시대》는 이제라도 이런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다그치는 나팔 소리"라고 평가했다. 전간기 급진파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농업의 재구조화, 탈식민화, 성평등과 복지국가가 구현될 1945년 이후 세계의 선구자"였다는 저자의 평가는 현재 기후 위기 대응이나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한 과감한 경제 기획의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 박노자·역자 원영수

박노자(블라디미르 티코노프) 교수는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2001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며, 《당신들의 대한민국》,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등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저작을 다수 발표했다. 역자 원영수는 1982년 이후 학생운동, 노동운동, 좌파 정치운동에 참여했으며, 현재 정치경제학 연구소 프닉스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되었다.

손선영

언론출판독서TV

2025년 8월 4일 오전 06:40 발행
#붉은시대#박노자#조선공산당창당100주년#항일투쟁#전간기좌파운동#세계사적맥락#의도된망각#제헌헌법#한겨레출판#원영수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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